"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이들이 어떻게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
‘기도하는 사람들이 왜 악을 저지르는가’,
‘거룩함의 외형 속에 감춰진 죄’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묻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톨릭 신자, 특히 신앙을 살아내려는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진실이기도 합니다.
1. 🕯️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이 내면의 ‘성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기도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손을 잡고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고귀한 길이죠.
하지만 그 기도가 삶과 분리될 때, 즉, 기도는 하면서도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할 때, 그것은 경건의 외피를 쓴 영적 위선이 됩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 속 수녀들은 수십 년 동안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묵주를 돌렸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은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을 향한 시스템적 학대와 억압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거룩함’을 조직적으로 이용해 죄를 정당화한 사례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매일 기도하고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을 가장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마태 15,8)
기도는 하되, 회개하지 않는 자.
경건은 있으되, 자비가 없는 자.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자들입니다.
2. ⚖️ 죄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종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서 저런 일이 벌어졌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마그달렌 수녀원의 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이들이, 수도원 안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왜 가능했을까요?
- 기도가 기계적인 형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회개 없이 습관만 남은 기도는, 오히려 양심을 마비시키는 껍데기가 됩니다. - 자기 정의(自義), 즉 "나는 하느님께 봉사하는 사람이니 잘못할 리 없어"라는 교만이
마음을 가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제도와 권위가 신보다 앞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현재 카톨릭의 모습은?
이 모든 것은 악마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유혹하는 가장 미묘하고 강력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너는 거룩한 사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 이 속삭임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어둠으로 끌고 갔는지 모릅니다.
3. ⛓️ ‘이토록 사소한 것들’ 속의 교회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작품은 과거의 수녀원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교회, 우리 자신, 우리 신앙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우리 는 얼마나 자주, 기도하면서도 세상의 고통에 눈을 감았습니까?
- 미사를 드리면서, 이웃의 부당한 고통에 침묵했을 때
- 묵주를 돌리면서, 가난한 자의 울음을 외면했을 때
- 성체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체 안에 있는 ‘가난한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을 때
기도는 시작일 뿐입니다.
삶으로 사랑하지 않는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입술보다 우리의 손과 발, 마음의 결단을 원하십니다.
✝️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신앙을 살아야 하는가?
빌은 침묵하는 공동체 속에서, 작은 결단을 합니다.
그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친 짓이고, 불편한 일이며, ‘이토록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진정한 복음의 실천, 사랑의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기도는 많았지만, 사랑이 없었던 수녀원과 교회. 침묵과 방관이 곧 공범이 된 마을 사람들. 그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걸어나온 빌 한 사람.
그야말로 진짜 기도한 사람, 그리고 기도를 삶으로 바꾼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