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라는 단어는 하나지만, 그 속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에서 유난히 눈에 띈 두 인물, 전한길과 전광훈은 보수 진영 내부의 이질성과 세대적,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식 기반 vs 종교 기반, 그들은 어디서 시작됐나?
전한길은 오랜 기간 공무원 시험 한국사 강사로 활동해온 교육자 출신이다. ‘전한길 한국사’ 교재로 수많은 수험생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꽃보다전한길’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출발점은 지식과 교육이다.
반면 전광훈은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 목사다.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다수의 광화문 집회를 주도했으며, 자유통일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대선 출마까지 시도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철저히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표현 방식의 차이, 설득 vs 선포
전한길은 "국민 계몽", "헌정 질서 수호", "상식 보수" 같은 논리 중심의 키워드를 사용한다. 유튜브 영상의 톤도 상대적으로 차분하며, 수험생 출신답게 헌법 조항과 역사적 맥락을 인용해 설명하는 방식이 많다.
이에 비해 전광훈은 "하나님이 문재인을 탄핵했다", "이 나라는 공산주의자에게 넘어갔다"와 같은 종말론적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의 메시지는 이성보다는 감정과 믿음에 기댄다. 설득이 아닌 선포이며, 청중은 ‘신도’다.
세대 기반도 다르다: 디지털 세대 vs 산업화 세대
전한길의 주요 지지층은 30~50대 남성, 특히 공시생이나 직장인 중 보수적 정서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를 통해 전한길의 콘텐츠에 접하고, 댓글과 후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전광훈의 지지층은 60대 이상 고령층과 보수 개신교 신자들이다. 이들은 실제로 광화문 광장에 나가 깃발을 흔들고, 설교를 들으며, 신앙과 정치가 결합된 구호를 외친다. 미디어가 아닌 현실에서 행동하는 유형이다.
정치참여 방식: 콘텐츠 정치 vs 거리 정치
전한길은 현재까지 정당에 가입하거나 출마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보수 시민단체나 싱크탱크 설립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치 담론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는 ‘플랫폼 보수주의’를 실험 중이다.
반면 전광훈은 정치 무대에 직접 뛰어든 행동가다. 2020년과 2024년 총선 및 대선 출마 경력은 물론, 자유통일당 대표로서 후보를 내세우며 구체적 권력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는 ‘거리 정치’의 전형이다.
결론: 한국 보수는 지금 갈라지는 중이다
전한길과 전광훈은 모두 보수 진영에 속해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은 다르다. 전한길은 지식과 합리로 국민을 설득하려 한다. 전광훈은 신념과 감정으로 군중을 결집시킨다.
이 두 인물은 지금의 보수가 하나의 흐름이 아닌, 복수의 갈래로 나뉘어 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우리는 어떤 보수를 선택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우리는 보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