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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클라베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은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간단하고 재밌게 정리해드릴게요.
콩클라베 역사 속 주요 사건들
1. 1268–1271년 콩클라베: 최장기 선거 (약 3년)
- 상황:
교황 클레멘스 4세 사후, 추기경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3년 동안 교황을 뽑지 못했습니다. - 결과:
화가 난 시민들이 회의 장소를 봉쇄하고,
식량 공급을 줄이고,
지붕을 헐어버려서(!) 결국 추기경들을 굶주리고 비맞게 만들어 버립니다. - 결국:
1271년, 그레고리오 10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영향:
이 사건 이후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콩클라베(Conclave)" 제도가 공식 규칙으로 제정됐습니다.
2. 1292–1294년 콩클라베: 정치 싸움과 "양치기 교황"
- 상황:
2년 동안 교황을 뽑지 못하고, 프랑스 vs 이탈리아 세력이 대립합니다. - 결과:
결국 정치에 염증을 느낀 추기경들이 수도원 은둔자였던 피에트로 델 모레(Pietro del Morrone) 를 찾아가서 강제로 교황에 추대했습니다. - 그가 바로:
교황 첼레스티노 5세. (양치기 출신, 매우 소박한 사람) - 그러나:
정치 싸움에 휘말려 불과 5개월 만에 사임합니다. (자진 사임) - 영향:
교황이 스스로 사임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었어요.
→ 훗날 베네딕토 16세(2013년 사임) 때도 이 전례가 인용됨.
3. 1378년 콩클라베: 교황 2명 탄생 (서방 대분열, Great Schism)
- 상황:
로마 시민들은 이탈리아 출신 교황을 원했지만, 대부분 추기경은 프랑스인이었습니다. - 결과:
겁에 질린 추기경들이 급히 이탈리아인인 우르바노 6세를 선출.
그런데 우르바노 6세가 성격이 매우 과격해 추기경들이 후회하게 됩니다. - 그래서:
일부 추기경들이 로마를 빠져나가서 다시 콩클라베를 열고 프랑스 출신 클레멘스 7세를 또 선출(!). - 결국:
교황이 2명 등장, 전 유럽이 로마파 vs 아비뇽파로 갈라집니다. - 영향:
약 40년간 서방 교회 대분열(1378~1417) 이 이어짐.
4. 1903년 콩클라베: "비토권" 사용 사건
- 상황: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리엥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토권(Veto)"을 행사합니다. - 결과:
리엥 추기경은 교황 선출에서 사퇴하고, 대신 피우스 10세가 교황이 됩니다. - 영향:
피우스 10세는 "세속 권력의 콩클라베 개입을 절대 금지" 하는 교회법을 제정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국가도 콩클라베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5. 2013년 콩클라베: 베네딕토 16세 사임 후 콩클라베
- 상황:
베네딕토 16세가 600여 년 만에 자진 사임 (건강상의 이유). - 특이사항:
사임으로 인한 콩클라베는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에 전례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 결과: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선출되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됩니다. - 영향: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에 "가난", "겸손", "개혁"을 강조하는 흐름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요약: 콩클라베 역사 속 주요 사건들
사건 | 시기 | 요약 |
---|---|---|
최장 콩클라베 | 1268–1271년 | 3년간 선출 실패, 결국 지붕 헐고 강제 선출 |
첼레스티노 5세 사임 | 1294년 | 양치기 출신 교황, 5개월 만에 사임 |
서방 대분열 | 1378년 | 교황 2명 출현, 유럽 분열 |
비토권 행사 | 1903년 | 오스트리아 황제의 간섭, 교회법 개정 |
현대 콩클라베 | 2013년 | 사임으로 인한 드문 콩클라베, 프란치스코 선출 |
콩클라베와 관련된 관습
- 콩클라베가 열릴 때 추기경들은 'Domus Sanctae Marthae'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동합니다.
- 선출된 교황은 즉석에서 교황 복장을 입고 발코니에 등장합니다.
- 교황 이름은 스스로 선택합니다. (프란치스코, 요한 바오로, 베네딕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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